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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느른>을 응원한다.
자유칼럼 > 상세보기 | 2020-09-14 19:53:08
추천수 1
조회수 7

작가

칼럼니스트 친구추가


방송 다큐멘터리는 제약이 많다. 방송날자가 정해지면 모든 제작일정을 방영일에 맞추어 역산하여 맞추어야 한다. 영화는 개봉일을 정해놓고 촬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상과 충분히 교감하면서, 제작의 방향과 표현 방법론을 놓고 주체적으로 고민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상당히 다르다. 대신 방송은 연출자 자신이 제작비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필요없이 안정적인 제작여건이 주어진다는 것이 장점이다.
방송 다큐멘터리를 묶는 또하나의 족쇄는 ‘시청률’이다. 특히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민영 방송사에서는 모든 장르에 걸쳐 돈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기에 디렉터나 프로듀서가 이에 대한 억압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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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대상에 대한 감독의 독창적 시선이 보다 가중치를 갖는 데 반해 방송 다큐멘터리에서는 방송에서 요구하는 이런저런 조건을 안전빵으로 충족시키기 위한 ‘기획’성 작품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기획성 조건 안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지문을 남기려 애쓰는 연출자들이 없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 기획성 조건에 대해 ‘회의’하는 정신이 희박한 것도 사실이다. 냉혹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예술가’와 직업적인 ‘월급쟁이’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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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성에 순치된 제작진이 가장 손쉽게 택하는 길은 ‘소재주의’에 굴종하는 것이다. 소재주의란, 한마디로 다른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혹은 전적으로 ‘소재’에 기대는 태도를 말한다. 연출자가 대상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해석하거나 지금 이 시점에 발언하고 싶은 무엇이 있어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기보다, 그동안의 방송 경험과 시청률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골라 영상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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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다큐에 있어서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은 이 인물이 ‘평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 평범해보여도 그 속에서 ‘비상’하고 ‘희소’한 무엇인가를 발견해내야만 사람들은 거기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 ‘비상함’ 속에는 실로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셀럽이거나, 죽음을 앞둔 비극적 인물이거나, 기구한 사연을 지닌 불행한 사람이거나, 특별한 선행을 하는 사람이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거나, 극한 상황에 놓여있거나, 보통사람들이 택하지 않는 특별한 선택, 특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거나,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 공간에 살거나 그러한 직종에 복무하거나, 그런 현장에 있거나,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옛 전통 속에 있거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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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획적 고려는 방송이라는, 원천적으로 제약이 많은 플랫폼을 활용하는 한 불가피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러한 소재적 특성 외에 더이상 아무 것도 없다고 할 때, 시대와 사회에 유의미한 질문에서 출발한 ‘관점’이나 ‘해석’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그때 이 다큐는 ‘소재주의’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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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산재한 정보를 선택하는 데서부터 ‘관점’이 개입하며, 선택한 그 정보로부터 더 깊이 넓게 탐구의 연결망을 넓혀가게 되면 결과로서의 ‘해석’을 낳게 된다. 그리고 그 해석을 보다 적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이 수단으로서 스토리텔링을 구사하게 된다.
그런데 ‘관점’이 부재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상투성’과 ‘선정성’이다. 소재주의는 특히 ‘선정성’에 경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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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구호단체들의 모금 광고가 ‘빈곤의 포르노그래피’라는 비판을 받아온 지는 오래 되었다. 가슴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깡마른 아이의 얼굴에 파리들이 달라붙어 있거나 젖을 아이에게 물린 바짝 마른 여성을 촬영한 모금 광고 방송은 지금도 볼 수 있다. 희귀병에 걸린 아이의 병변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굶주림이나 질병이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비인간적인 형태로 변모시키는지 그 극단적인 모습을 ‘전시’함으로써 보는 사람의 감성을 최대한 자극한다.
이를 보는 사람은 그 ‘비정상성’에 경악하며 한편으로는 그 ‘비정상성’을 자세히 탐색함으로써만 그 대상의 불행에 동의하고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이다. 19세기 유럽에서 기형아 전시가 인기를 끈 것도 이와 동일하다 하겠다.
이 과정의 밑바닥에 있는 것은 인간 내면의 어둠에 잠재해있는 ‘관음’의 기호다. 모금 광고에서 보이는 일련의 노출에 대해 ‘포르노그래피’란 비유가 붙게 된 까닭이 여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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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단체들이 아직도 이런 패턴의 모금 광고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극단적인 형태의 불행을 전시해야만 금품 기부가 늘어나는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일 터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관점’과 ‘해석’이 있든 말든 ‘선정성’이 두드러지면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오랜 경험이 ‘소재주의’를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요즘에 와서는 뉴스에서도 이런 패턴이 확산 일로에 있다. 명분은 이러저러 내세우지만 내면적으로는 모금 광고와 마찬가지로 수익을 위해 ‘포르노그래피’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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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 다큐플렉스의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다큐가 설리의 연인 최자에게 설리 죽음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는 것이 단초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최자에게 ‘혐의’를 두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편집에서 무엇인가를 빼고 넣었다면 그것은 단지 설리의 죽음이 갖는 ‘비극성’을 보다 극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때문에 최자에 관련된 문제는 지엽적인 것일 뿐이다. 보다 더 큰 문제는 근본에 있다고 본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를 지금 왜 방송을 해야 하는지, 설리의 죽음 당시 미디어에서 다룬 이상의 어떤 것이 여기 있는지, 설리를 바라보는 독자적인 ‘관점’은 무엇이고 ‘해석’은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의식’을 던지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것이 ‘소재주의’에서 출발한 다큐가 아니라는 것을 MBC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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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피디수첩>으로 대표되는 시사다큐와 <인간시대>로 대표되는 휴먼다큐의 명가였다. 오랜 정치적 탄압의 시간을 거친 후 시사다큐는 다시 그 명성을 회복하고 있는 반면, 휴먼다큐는 소재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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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정신으로 말하자면, 웹플랫폼에 숏폼이지만 같은 MBC 최별 피디가 최근 런칭한 유튜브 채널 <오느른>이 보여주는 세계가 한결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이 채널은 소재주의의 정반대편에 있다.
<오느른>은 최별 피디가 서울 전세금을 뺀 4천5백만원으로 김제 시골의 폐가를 사서, 그곳에 살아가는 모습과 만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과대한 목표는 없지만, 과대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극적이지도 않지만 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대단히 흥미진진한 것도 없지만 대단히 흥미진진하지 않기 때문에...이곳은 ‘진짜’의 세계로 받아들여지고 시청자는 주인공(최별 피디)의 경험을 함께 하며 ‘쉼’을 얻는다. 풀과 나무의 초록, 불어오는 바람, 이웃집 강아지 같은 소소한 행복도, 리모델링 과정에서 불거지는 소소한 불편도 의외의 흥미로움으로 재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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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주제를 부여하자면, 이것은 도시인간이 시골에서 살면 발견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소박한 경험론이다. 늘 알던 것 같지만 새롭게 보이는 것은 ‘젊은 도시인간의 눈’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했기 때문인 것이다.
새롭다는 것은 기상천외의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본다는 것. 선정적인 소재 아니라도 대중 속에 잠재된 다른 욕구를 끌어내는 것만으로도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제작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 먹방이니 게임이니 뷰티니 시사정보니 온갖 시끌벅적한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유튜브 세계에서 <오느른>이 말해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오느른>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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